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릭 칸토나 (문단 편집) == 여담 == * [[프리미어 리그]] 최초 [[해트트릭]] 기록의 보유자다.[* 1992년 8월 25일, [[리즈 유나이티드]] vs [[토트넘 홋스퍼]]. 최종 점수 5-0] * 골을 넣은 후 기뻐서 방방 뛰는 여타 선수와는 달리 칸토나의 골 세레모니는 그야말로 특별했다. 옷깃을 칼같이 잡아 세운 뒤 무표정한 얼굴로 관중들을 한번 슥 훓어보는데[* [[에릭 칸토나#s-3|세 번째 항목]]에 기술된 [[https://youtu.be/dRgBKPQw3JU?t=295|두번째 동영상 마지막 장면 참조.]] 매번 그랬던 건 아니고 FA컵 결승골을 리버풀 상대로 성공시켰을 때나 중요한 경기에서 극적인 골을 성공시켰을 때는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기뻐날뛰는 세레모니를 했다.] 칸토나의 그 작렬하는 [[카리스마]]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켜 '칸토나=옷깃'이라는 공식마저 성립되었다. 그리고 그 세레머니에 감명을 받은 [[박건하]]도 골을 넣은 후에는 옷깃 세레머니를 했다. [youtube(UBODWlCdZW4, start=71s)] [[1996년]] [[나이키]]의 CF 중 하나인 Good vs. Evil 에서는 슛을 차기 전 옷깃을 세운 후 불꽃슛을 날리는데,(이때의 불어 대사는 작별인사인 'au revoir.') 당시 해외축구 방송이 드물어 잘 모르는 사람도 많았지만 저 CF로 그의 폭풍간지만큼은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 * 소싯적은 물론이고 나이를 먹고서도 여전한 [[다혈질]]적인 [[성격]]이, [[맨유]]에서는 [[군기반장|팀 전체를 규합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EPL 출범 때 이미 데뷔하여 EPL 짬밥은 칸토나와 동급이었던 [[라이언 긱스|긱스]]야 그렇다 치더라도, 당시 갓 [[알렉스 퍼거슨/지도자 경력#s-3.2|유스에서 올라왔던]] [[라이언 긱스#s-2.1|"퍼기의]] [[폴 스콜스#s-2.1|아이들"]]이 함부로 기어오르지 못한 것은 그야말로 칸토나의 [[카리스마]]가 지대했다는 분석이다. [[데이비드 베컴]], [[폴 스콜스]], [[게리 네빌]] 등이 멋모르고 나대지 못하도록 했다고. 또다른 개차반으로 유명한 [[로이 킨]]도 칸토나에겐 찍소리 못했다고 한다.[* 다만, 로이 킨의 자서전에 쓰인 [[스티브 브루스]]의 15,000 파운드짜리 수표와 관련 된 일화에서는 어떠한 결과가 나올 지 모른 채 내기에 참여한 스콜스와 [[니키 버트]]의 용기를 칭찬했다. 그리고 본인이 내기에서 승리해 받은 12,000파운드 짜리 수표를 집에서 두 장으로 나눠 스콜스와 버트의 이름을 적고 그 둘에게 준 것으로 보아 강한 성격만큼이나 선수들에게 감동을 주는 법 또한 잘 알고 있던 선수였던 걸로 보인다. 한 팬이 기억하기로는 칸토나와 로이 킨 모두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유명하지만 로이 킨은 단순하게 다혈질스러운 성격이었다면 칸토나는 다혈질 적이지만 사람의 심리 상태또한 잘 파악하고 잘 이용할 줄 아는 영리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 불같은 성질로 유명한 칸토나지만 팬들에게는 매우 친절했다. 솔샤르가 말하길 후배들한테 팬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조언을 한 게 칸토나였다고 한다. 요약하면 "팬들과 직접 만날 기회가 있다면 이걸 명심해라. 대부분의 팬들은 앞으로 평생 너희와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마주 볼 일은 없을거다. 아마 본다고 해봐야 30초 정도가 고작이겠지. 그 30초동안 너희가 그 사람들에게 평생 남을 인상을 심어주는거다. 매번 우리를 응원해주러 와주는 그 고마운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냥 우리가 가볍게 웃으며 싸인해 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잊지못할 추억이 될 수 있다. 그게 싫다고 그냥 평생 개새끼로 남고 싶으면 그 판단은 네 몫이다." 라는 말인데 솔샤르는 크게 감명받았다고 한다.[[https://www.mirror.co.uk/sport/football/news/lesson-eric-cantona-taught-ole-21031007|#]] * 은퇴 후에도 계속 축구계에 몸담고 있었는데, 각종 미디어의 인터뷰는 물론이요 각종 광고, 축구 영화에도 출연했다. * 전술했던 것처럼 배우로써 경력도 은근 있는 편이다. 사실 은근 있는 편이 아니라 선수 경력 말년과 배우 경력 초반이 살짝 겹치고, 1997년에 14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이후에도 꾸준히 배우 경력을 이어오고 있으니 오히려 배우 경력이 선수 경력보다 길다. [[1995년]] 프랑스 영화 Happiness Is in the Field로 데뷔해 작은 역들을 맡다가 [[2009년]] 좌파 영화로 유명한 [[켄 로치]] 감독의 영화 <에릭을 찾아서>의 타이틀 롤을 맡았다. 이 영화는 그 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상당히 괜찮은 코메디 영화라는 평을 들었다. 덕택에 에릭 칸토나는 그 힘들다는 칸 영화제 레드 카펫도 밟았다. 이후로도 프랑스 영화나 영국 영화에 소소하게 출연하고 있는 중. [[2015년]] 하반기에는 [[디즈니]]-[[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굿 다이노]]의 프랑스어 더빙판에서 포레스트 우드부시 역의 목소리를 맡기도 했다. 이외 얀 곤잘레스의 유 앤 더 나잇에도 출연하는등 프랑스 영화 출연 비율이 높은 편. 리암 갤러거의 once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에 주연 배우로 등장하였다. 2020년에는 에릭 칸토나를 주연으로 한 프랑스 드라마 <신은 나에게 직장을 주어야 했다>가 넷플릭스에 나오기도 했다. * 상기한 바와 같이 2010년 재창설한 뉴욕 코스모스에서 초기 단장직을 맡았다.[* 참고로 이 팀의 명예 회장은 구 코스모스의 스타 플레이어였던 [[펠레]]. 구단 관계자들을 축구계의 전설들로 하나하나 채워가며 팀 리빌딩을 시도했으나, 칸토나에게도 실질적인 권한은 주어지지 않아 코스모스가 첫 경기를 치르기도 전에 클럽을 떠났다.] [[2011년]] 프리시즌 기간에 [[폴 스콜스]]의 은퇴 기념을 위해 마련된 맨유 vs 뉴욕 코스모스 간의 친선전 때 10여 년 만에 올드 트래포드를 방문했다. 참고로 스콜스 은퇴 경기에 칸토나가 초청된 것은 원래 스콜스가 칸토나를 잘 따랐던 것도 있지만, 남에게 주목받기 싫어하는 스콜스가 '칸토나가 오면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될 테니 나는 [[아웃 오브 안중]]이 되겠지.'라는 노림수를 편 것이었다고 직접 인터뷰에서 밝혔다. * [[2012년]] 프랑스 대선에 출마한다는 기사가 떴다. * [[박지성]], [[로이 킨]],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퍼거슨의 헤어드라이어를 맞지 않은 몇 안 되는 선수였다.[[https://soccerline.kr/board/15702251?searchWindow=&searchType=0&searchText=&categoryDepth01=1&page=1|#]] 칸토나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으며, 그 철학에서 어긋나는 순간 바로 그 성질머리가 튀어 나오는 사람이라, 퍼거슨이 헤어드라이어를 시전했다면 칸토나는 점점 비뚤어져 둘의 관계는 나빠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당시 선수들의 증언을 봐도 칸토나는 퍼거슨에게 아예 다른 대접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번은 긱스가 양복 맨윗단추를 잠그지 않고 오자 퍼거슨한테 '단추 잠가라. 너네는 맨유를 대표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꾸중을 듣고 구석에서 궁시렁 거리다가 칸토나가 흰색 수트에 흰빨 나이키 운동화 차림으로 와서 감독이 뭐라 한소리 할지 기대하고 있었는데 퍼거슨은 칸토나와 악수를 하고 선수들에게 '얘들아 스타일이란 이런거다'라 했다고 한다. 로이 킨도 만약에 우리가 복장 제대로 안갖춰 입고오면 크게 혼났을 텐데 칸토나는 양복에 운동화 신고 편하게 와도 퍼거슨이 '쟨 내버려 둬라. 프랑스인이잖냐'며 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선수 간에 저렇게 차별을 뒀다면 나중에 문제가 터졌겠지만 감독이 선수단을 워낙 제대로 통제한 데다가 칸토나는 카리스마와 이를 뒷받침해주는 실력으로 잠재웠다. * 맨시티가 44년 만의 우승을 확정지은 순간에 칸토나의 쿵푸 킥이 그의 거실에 있던 커피 테이블에 작렬했고, 아들은 그걸 보며 아버지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http://www.goal.com/en-gb/news/2896/premier-league/2012/07/23/3259643/cantona-kung-fu-kicked-coffee-table-after-manchester-city?|#]] * 전성기를 PL에서 보내서 그런지는 몰라도 PL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축구계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UEFA 유로 2016|유로 2016]] 때는 공공연하게 "유로에서 나는 잉글랜드를 응원한다. 축구인으로서는 나에게 잉글랜드의 피가 흐른다" 라고 인터뷰에서 얘기했으며 [[https://www.theguardian.com/football/2016/may/24/eric-cantona-mourinho-manchester-united-guardiola|#]] 잉글랜드가 아이슬랜드에게 패배했을때는 완전 빡돌아서 내가 감독하면 저딴 일은 절대 없을거다 라고 하며 자기 잉글랜드 국대 감독 시켜달라는 비디오를 올리기도 했다. [[http://www.dailymail.co.uk/sport/football/article-3669901/Manchester-United-icon-Eric-Cantona-makes-pitch-England-boss-pledges-never-lose-against-small-frozen-island.html|#]] * 은퇴 이후에도 종종 맨유 지지 발언을 하며 맨유 라이벌들을 조롱하는 발언을 하는데 [[루이스 엔리케]]가 휴식을 위해 [[FC 바르셀로나|바르셀로나]] 감독직에서 나간다고 하자 "쉬고 싶으면 [[아스날 FC|아스날]] 감독하면 되는거 아니냐? 거긴 딱 쉬긴 좋다" 라는 발언으로 구너들을 벙찌게 만들었다. [[http://www.goal.com/en/news/8/main/2017/03/07/33399982/perfect-destination-for-tired-luis-enrique-cantona-has|#]] * 취미가 시 쓰기와 읽기라고 한다. 실제로 축구황제 [[펠레]]에 대한 평가를 '어두운 방을 밝게 밝힐 수 있는 예술가. 1970 월드컵 결승전에서 펠레로부터 카를로스 아우베르투에게로 이어진 패스는 랭보의 시와 같았다.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보는 이들에게 영원함을 느끼게 한다.'로 했을 정도로 시적인 표현을 즐긴다. * 맨체스터 테러가 났을 때 유명인사 중 제일 먼저 영상 메시지를 보낸 사람 중 한명이다. 진심으로 슬퍼하며 유가족들에게 조의를 표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평소에 불같은 성격인 칸토나의 부드러운 면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영상이다.[[https://www.facebook.com/Channel4News/videos/eric-cantona-tribute-to-manchester-terror-victims/10154868019776939/|#]] * 진보적 성향이 강하다. [[http://www.footballi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99200|금융 문제와 관련해서 빈부격차와 불공정을 비판한 것도 있고]] 좌파영화 감독인 [[켄 로치]]의 영화에도 꾸준히 출연하고 있다. * [[똥군기]]로 인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기가 끝날 때마다 담배를 물고 [[라이언 긱스]]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며, 라커룸에서도 후배 선수들에게 군기를 과시했다는 증언도 많이 나왔다.[* [[데이비드 베컴]]도 자신이 칸토나에게 자주 맞았었다고 밝혔다.] 똥군기가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은 2000년대 후반에서야 생겨났고, 칸토나에 수시로 당했었던 라이언 긱스는 자신이 고참 선수가 되면서 권력이 생기자 라커룸에서의 똥군기를 없애 놓았다. * 2018-19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맨유]]가 [[파리 생제르맹 FC|PSG]]를 상대로 승리하고 8강에 진출하자 [[알렉스 퍼거슨]]과 [[올레 군나르 솔샤르]]와 함께 7일 승리를 기념하는 사진을 찍었다. * 2018-19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맨유]]가 [[파리 생제르맹 FC|PSG]]를 꺾은 후 8강에 진출한 이후 [[네이마르 주니오르|네이마르]]가 경기장으로 내려가 주심을 비난하는 등 화를 참지 못하고 난동을 부리자 맨유 라커룸으로 가던 칸토나는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며 비판했다. 칸토나의 행동을 본 네이마르의 아버지는 화가 났고, 양 측은 한동안 신경전을 벌였다. 그는 경기 후 자신의 SNS에 네이마르의 사진을 게재한 뒤 “바비큐처럼, 너는 햇빛이 내리비치는 봄이 와야 나오지”라고 조롱했다. 이는 네이마르가 겨울에 자주 부상을 당하고 봄에 돌아오는 것을 바비큐 파티가 많은 봄에 빗대어 비꼰 것이다. * [[https://soccerline.kr/board/15702251?searchWindow=&searchType=0&searchText=%ED%8C%94%EB%B6%88%EC%B6%9C&categoryDepth01=1&page=0|퍼거슨을 팔불출로 만든 남자]] * [[리암 갤러거]]의 노래 Once 뮤비에 왕의 역할로 등장한다. [[https://youtu.be/MDhiQfekdxo|링크]] 헌데 참고로, 리암은 공교롭게도 열렬한 [[맨체스터 시티 FC|맨시티]]의 팬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맨유]]와 [[맨체스터 시티 FC|맨시티]]는 [[맨체스터 더비|서로가 지역 라이벌]]이다.] 칸토나가 인스타그램에 이 노래(Once)를 부르는 것을 보고 리암 갤러거 측에서 그를 섭외하여 뮤직 비디오 촬영을 했는데, 섭외 과정에서 출연료로 얼마를 받고 싶냐는 문의에 칸토나가 "돈은 필요 없다"고 해서 도리어 당황했다고. 그 외에도 비행기는 어떻게 예매해줬으면 좋겠냐는 질문에도 "내가 알아서 비행기 타고 가겠다", 호텔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냐는 질문에도 "호텔 예약해 줄 필요 없다", 공항에서 픽업해 주겠다는 얘기에도 "내 차는 내가 알아서 타고 가겠다", 케이터링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냐는 질문에도 "내 음식은 내가 싸가겠다", 어떤 와인을 원하냐는 질문에도 "내 와인은 내가 챙겨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진짜로 출연료도 없이 자기가 알아서 비행기랑 차 타고 와서 호텔이랑 끼니도 자기가 알아서 하고 자기가 가져온 와인 마시면서 뮤직 비디오 촬영하고 그냥 갔다고 한다. [youtube(tuLAn9adQpI, start=92s)] * [[피파 21]] 트레일러에 등장하며 신규 아이콘 출시가 확정되었다. [[파일:골닷컴 선정 시대별 공격수 5인.jpg]]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공격수 5인을 선정했는데, 1990년대 공격수들 중 5위에 이름을 올렸다. * 선수의 기량과 출신 국가의 전력에 비해 국가대표로서의 커리어는 최악이다. 하필 [[프랑스 축구의 저주받은 세대|프랑스가 두 번 연속 지역예선에서 탈락한 1990년과 1994년 대회에서만 국가대표 선수였다.]] 다시 말하자면 '''우승 두 번에 빛나는 프랑스가 가장 축구를 못하던 시기에만 활동했던 선수'''였던 것이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이 개최된 다음해에 국가대표 데뷔를 해서 1994년 미국 월드컵이 개최된 다음해에 은퇴했다. 기간 상으로는 월드컵 예선에 단 두 대회만 출전했는데 '''그 두번 모두가 지역예선 탈락'''이었으니 월드컵의 '월'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다. 당장 이 항목에서도 프랑스 정도의 월드컵 강자에 해당되는 국가의 이 정도 스타플레이어가 국가대표 경력이 기재되지 않은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게 어떤 거냐 하면 화려한 클럽 경력 대비 월드컵 경력이 1회에 불과한 [[차범근]]보다도 훨씬 심한 것이다. 물론 차범근 역시 월드컵 무대에 나설때는 이미 노장이었기에 팀의 탈락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본선에 진출이나마 해보았다.] 그래도 국가대표 활약 자체는 45경기 20골로 우수했던 편이다. 시기를 보면 알겠지만 쿵푸 킥 사건 전후로 국가대표에서 반 강제 반 자의 은퇴를 하여서 활약 시기도 매우 짧은 편이다. 이미지가 그래서 그렇지 사실 31살에 은퇴한, 당시를 기준으로 생각해도 매우 이른 시기에 은퇴한 선수다. 그 이른 은퇴로 이미지가 확실한 반 바스텐과 똑같은 나이에 은퇴를 했다. * 그가 뛸 당시만 해도 프랑스는 징병제였기 때문에 프로 데뷔 후 1984년에 12개월간 군복무를 수행했다. 몰론 복무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김천 상무]]와 같은 군경팀에서 뛰면서 경기 감각을 잃지 않았다. [[분류:1966년 출생]][[분류:마르세유 출신 인물]][[분류:프랑스의 남자 축구 선수]][[분류:스트라이커]][[분류:세컨드 스트라이커]][[분류:1983년 데뷔]][[분류:1997년 은퇴]][[분류:AJ 오세르/은퇴, 이적]][[분류: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은퇴, 이적]][[분류:FC 지롱댕 드 보르도/은퇴, 이적]][[분류:몽펠리에 HSC/은퇴, 이적]][[분류:님 올랭피크/은퇴, 이적]][[분류:리즈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분류: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분류:프랑스의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참가 선수]][[분류:UEFA 유로 1992 참가 선수]][[분류:프리미어 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자]][[분류:축구 행정가]][[분류:축구 경영인]][[분류:프랑스 남배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